2차 세계대전, 6·25전쟁 등에 참여한 미군 참전용사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쓰러지고 있다. 이들이 주로 지내는 참전용사 요양원이 코로나 집단 감염의 온상이 되면서 각 주에서 참전용사 수십명이 죽어나가고 있다. “이들(참전용사)에게 코로나가 마지막 전쟁이 됐다”(블룸버그통신)는 말이 나온다.
6·25전쟁 참전용사인 아버지 아놀드 헤이버씨의 군복을 끌어안고 있는 아들 미첼. /블룸버그통신
6·25전쟁 기간 독일에서 복무한 참전용사 아놀드 헤이버씨는 지난달 19일(현지 시각) 미 뉴저지주 북동부 패러머스의 한 주립 참전용사 요양원에서 91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전역 후 걸린 대장암도, 갑작스런 심장마비도 이겨냈지만 이번 코로나만큼은 이겨내지 못했다. 투병 후 두 다리마저 못 쓰게 됐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해 자녀들이 “바이오닉(생체공학) 맨”이라고 불렀던 그다.
장례식도 코로나로 조촐히 치뤘다. 아들 미첼은 블룸버그 통신에 “아버지는 미군으로서 조국을 위해 싸웠던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며 “이건 아버지가 가시는 길에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10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헤이버씨가 머문 요양원에서만 현재 72명이 코로나로 사망했다. 현재 요양원에 거주하는 200여 명의 참전용사와 그 배우자 중 60%인 120여 명이 코로나에 걸린 상태다. 요양원 직원 또한 5분의 1이 코로나에 감염됐다. 요양원 업무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참전용사 요양 체계도 붕괴된 수준이다.
6·25전쟁 참전용사 아놀드 헤이버씨와 65년간 해로한 아내 레나가 군복무 시절의 남편 사진이 담긴 액자를 품에 안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같은 요양원에 아버지를 모신 스티브 마스트로피에트로씨는 지난달 11일 코로나로 사망한 6·25전쟁 참전용사 아버지 토마스(91)의 시신이 다른 장례식장에 보내지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팔찌에 차는 신분증이 다른 사람과 바뀐 탓이다. 아들 스티브는 “요양원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알았으면 아버지를 집에다 모셨을 것이다”며 “아버지를 여기 모신 게 너무 불행스럽다”고 말했다. NYT는 “최후의 모욕적 대우가 그의 죽음과 함께였다”고 전했다.
늑장 대처와 인력난이 비극의 원인으로 꼽힌다. 해당 요양원은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지난 3월 30일부터 적용했다. 이로부터 20일이 채 지나기 전에 10명의 코로나 사망자가 나왔다.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이후에도 야외 활동을 제한하지 않았다. 직원까지 감염세가 심각해지자 뉴저지주는 지난달 초 병력 40 명까지 투입해 코로나 차단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사태가 악화일로에 치닫자 뉴저지주 보훈부 국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달 초 코로나로 인한 참전용사 요양원 내 사망자는 미 전역에서 5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뉴저지주 남서부 에디슨의 한 주립 참전용사 요양원에선 현재까지 50여 명이 코로나로 숨졌고, 매사추세츠주의 한 주립 참전용사 요양원에선 참전용사와 직원이 각각 80여 명씩 코로나에 걸렸고 최소 70명의 참전용사가 사망했다. 뉴욕주 롱아일랜드, 펜실베이니아에서도 각각 60, 3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뉴저지주 북동부 퍼래머스의 뉴저지 참전용사 요양원의 전경. /블룸버그통신
요양원에 부모를 모신 자녀들 사이에선 “요양원을 없애버리고 공원이나 지어야 한다” “집단 총살과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뉴저지주 한 주립 참전용사 요양원에 지내는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아내 클레어 호브스피앤씨의 딸은 블룸버그통신에 “어머니는 코로나에 걸렸다 회복 중이다”며 “어머니는 가장 운이 좋은 사람 중 하나다”고 말했다.
연방 차원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립 참전용사 요양원은 각 주가 소유하고 운영하지만 미 보훈부가 매년 운영을 검열해야 한다. 그러나 작년 미 의회 산하 회계감사원(GAO) 조사에 따르면 미 보훈부는 정기적으로 주립 참전용사 요양원 성과 측정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요양원의 건강·보건 부문에 수백여가지 지적 사항이 나왔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4일 전했다.
당국도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뉴욕주는 10일 요양원 근로자에 대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일주일에 2번씩 코로나 검사를 받도록 했다. 뉴저지주는 최근 참전용사 요양원 실태 파악팀을 만들고, 주 검찰은 사망률이 유독 높은 요양원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 앞서 지난 5일 미 상원 일부 민주당 의원은 주립 참전용사 요양원에서 코로나 사망자가 속출하는 데 대해 GOA에 미 보훈부 감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6·25전쟁 참전용사 아놀드 하버씨의 젊은 시절 사진(왼쪽)과 가족 사진들. /블룸버그통신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주 요양원 봉쇄 완화 지침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침에는 요양원 내 가족 방문 허용, 공동 배식 재개, 야외 운동 등이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