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 2021-04-29 02:48:13
[ 박의명/조진형 기자 ] 금융당국이 미국 초대형 헤지펀드 시타델 그룹 계열
시타델증권의 불공정거래 혐의를 조사한 지 2년여 만에 역대 최대 규모인 100억
원대 과징금 부과에 나선다. 수십조원의 초단타매매(고빈도 매매)로 코스닥시장
을 교란한 혐의다. 알고리즘 불공정거래 제재는 한국에서 전례가 없는 데다 해
외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여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다음달 10일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자
조심)를 시작으로 시타델 계열인 시타델증권의 불공정거래 혐의 제재 절차를 개
시한다. 최종 징계 수위는 증권선물위원회, 금융위원회 심의·의결을 거
쳐 확정된다. 형사 고발은 없지만 과징금 사상 최대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시타델그룹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매매로 유
명한 세계적인 퀀트 헤지펀드다. 한국에선 일정 조건에 맞춰 자동 주문을 내도
록 한 프로그램을 활용한 초단타매매로 수익을 올렸다. 한국 ‘개미&rsqu
o;들의 외국인 추종 매매 심리를 역이용해 고도의 알고리즘을 짠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코스닥시장 활성화 정책으로 거래금액이 급증하자 시타델증권은 메릴린
치 창구를 통해 하루 1000억원 규모로 수백 개 종목을 초단타로 매매했다. 메릴
린치 창구로 주문이 들어오면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했다. 개인투자자들이 청와
대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이 2년 전 불공정거래 조사
에 나섰다.
한국거래소는 금감원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인 2019년 시타델의 매매 주문을
수탁한 메릴린치를 제재했다. 거래소는 메릴린치가 시타델증권으로부터 6220회
의 허수성 주문을 수탁해 시장감시규정 제4조(허수성 주문 금지)를 위반했다고
발표했다.
금감원은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매매여서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신 자본시장법 제178조 2의 ‘시장질서 교란행위 금
지’ 위반 혐의를 적용해 100억원대 과징금 부과안을 올리기로 했다. 자본
시장법은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시세에 부당한 영향을 주는 경우 시장교
란 혐의로 처벌(과징금 부과)할 수 있도록 2014년 개정됐다.
금감원은 시타델증권의 알고리즘 매매를 ‘거래 성립 가능성이 희박한 호
가를 대량으로 제출한 후 해당 호가를 반복적으로 정정·취소해 시세에
부당한 영향을 주거나 줄 우려가 있는 행위’로 규정했다.
100억원대 과징금은 금융당국이 부과한 것으로는 사상 최대다. 삼성바이오로직
스의 분식회계 관련 과징금(80억원), 골드만삭스의 무차입 공매도 과태료(75억
원)를 넘어선다. 고의성을 입증할 수 없어 검찰에 넘길 순 없지만 그만큼 불공
정거래 혐의를 무겁게 본다는 의미다. 전 세계적 관심
세계 금융당국과 운용업계는 한국 금융당국의 제재 절차에 주목하고 있다. 알고
리즘 매매의 불공정거래 혐의는 세계적으로 처벌 사례가 많지 않다. 미국과 갈
등을 빚고 있는 중국 금융당국만 철퇴를 내렸을 뿐이다. 중국 금융당국은 2015
년 시타델이 알고리즘을 이용한 허수성 매매로 가격을 교란했다고 판단했다. 이
에 대한 합의금으로 시타델은 작년 초 6억7000만위안(약 1149억원)을 지급했다
.
한국에서의 알고리즘 매매 불공정거래 제재안은 자조심 논의 때부터 치열한 공
방을 예고하고 있다. 거래소의 메릴린치 제재 때도 허수성 주문 판단 기준과 제
재 적정성을 놓고 적지 않은 논란이 벌어졌다. 시타델증권도 메릴린치와 마찬가
지로 소송대리인으로 김앤장을 선임해 적극 대응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AI와 프로그램을 활용한 초단타매매가 급증하는 만큼 이번 제재 결
과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 법무법인 소
속 변호사는 “관련 규정이 모호해 알고리즘 매매의 불공정거래를 입증하
는 것은 쉽지 않다”며 “다만 이번 첫 사례에 대한 결론이 나오면
한국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의 알고리즘 불공정거래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가
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위 심의 의결 과정에서 시장교란 혐의가 인정되지
않거나 과징금이 대폭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거래
소의 메릴린치 제재 의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의명/조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