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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수술 전 잠재우면 끝? 마취의는 생명 유지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
  • 25/07/01 12:20
  • 조회 34
gregory16 자기 소개가 없습니다.



대량 출혈·부정맥·쇼크 대응부터 산소농도·체온까지 실시간 감시- 수술 보조 아닌 외과술 전제조건
- 전신마취 사망률 1만 명당 1명↓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 바로 2007년 여름 개봉한 영화 ‘리턴’이다. 이 영화는 수술 중 마취에서 깨어나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수술 중 각성’( Anesthesia  Awareness)을 소재로 삼았다. 의학적으로도 이 영화는 허구로만 보기 어렵다. 수술 중 각성은 매우 드물지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며, 환자에 평생 잊지 못할 외상으로 남는다. 이 영화는 마취 실패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강렬하게 전달한 작품이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로서 전신마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양산부산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윤지욱 교수가 수술 중인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 제공
양산부산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윤지욱 교수가 수술 중인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 제공
마취( anesthesia)는 ‘감각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이는 그리스어 ‘ an (없음)’과 ‘ aisthesis (감각)’의 합성어이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전신마취는 단순히 감각을 없애는 데 끝나지 않고, 의식을 잃게 하고, 통증을 차단하며, 근육을 이완시키고, 불필요한 반사작용을 억제하는 복합적인 의학적 상태를 조성하는 과정이다. 전신마취가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외과 수술을 할 수 있다. 마취는 ‘보조 기술’이 아니라, 외과 수술의 전제 조건이며 필수 요소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마취는 매우 원시적인 방식으로 시행됐다. 에테르나 클로로포름 같은 물질을 거즈에 적셔 환자의 입과 코에 대는 방식이 전부였고, 수술 중 환자의 혈압이나 맥박을 제대로 측정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마취 관련 사망률은 매우 높았다. 때로는 수술보다 마취가 더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취는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 다양한 약물과 첨단 감시장비가 등장하면서, 전신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환자라도 안전하게 마취와 수술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전신마취 중 사망률은 1만 명당 1명 미만이다. 이는 항공기 사고보다도 낮은 확률이다.

현대의 수술실에서는 마취의 시작부터 끝까지 환자의 산소 농도, 마취가스 농도, 혈압, 심박수, 체온, 진정 정도, 신경차단 및 통증 정도, 소변량까지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이를 통해 환자의 생명 상태를 미세하게 조절하고 유지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사람이 바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다. 흔히 마취과 의사는 수술 시작 전에 환자를 ‘재우는 사람’ 정도로만 인식되지만, 실제 역할은 훨씬 더 넓고 깊다.

수술 중 대량의 출혈이 발생하거나, 갑작스런 부정맥이나 쇼크 상태가 발생해도 가장 먼저 대응하는 것이 마취과 의사다. 심장 기능을 유지하고, 혈류를 안정시키며, 통증을 최소화하는 것까지 모두 그 역할에 포함된다. 또 수술 후 통증 조절, 중환자 관리, 만성 통증 치료 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술실 안에서 외과의가 칼을 든다면,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부드럽게 지탱하는 손길이다. 그 존재가 조용하다고 해서, 결코 가볍지 않다.

마취는 ‘보이지 않는 의학’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고도의 과학과 섬세한 인간 관리가 결합된, 현대 의학의 가장 정밀한 분야 중 하나다. 수술이 끝난 뒤, 환자가 안전하게 깨어날 수 있는 것도 마취과 의사의 노력 덕분이다.

한편, 이 연구 결과는 ‘자마 네트워크 오픈( JAMA   Network   Open )’에 최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