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홍정민·박현렬 기자]
현재 돼지 도축 혈액은 약 70%는 사료로, 약 15%는 식용(선지, 순대)으로, 나머지는 폐수로 처리되고 있다. 도축장의 돼지 혈액을 분무건조에 의한 혈장단백질로 제조하는 공장의 내부 모습.
올해 초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전국적 확산세를 보인 후 잠잠한 가운데 지난 4월 국회에서 발의된 사료관리법 개정안의 ‘동종 성분 사료 원료 제한’을 둘러싸고 업계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국내 축산 현장과 사료 전문가들은 “질병 차단이라는 목적에는 공감하지만 오염 원료 관리 문제와 정제·살균된 고부가가치 생리활성 원료를 동일선상에 놓은 과도한 조치”라며 우려를 표했다.
과학적 검증에 기반한 정밀 위험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대신 전면 금지라는 카드를 꺼내 들 경우 국내 양돈 산업의 면역 기반이 무너지고 수입산 의존도만 높이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다단계 교차 사멸로 단백질만 보존 가능해져
동종급여 금지 법안의 주요 명분은 돼지 유래 원료가 ASF 등 악성 전염병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개정안의 핵심은 돼지 혈장단백질(SDPP, Spray-Dried Porcine Plasma)을 포함해 돼지에서 유래한 원료를 다시 돼지 사료로 사용하는 ‘동종급여(Porcine-to-Porcine Feeding)’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검증된 안전 공정인 ‘다단계 교차 사멸(Multiple-hurdle approach)’기술을 적용해 첨단 시설에서 분무건조와 후숙 공정을 거친 혈장단백질은 바이러스 감염력이 완전히 차단된다.
최근 전북 익산 혈장단백질 생산 현장 취재와 글로벌 사료 학계,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의 연구에 따르면 1단계 분무건조 공정의 열적 사멸은 유입 열풍 200~250도, 출구 온도 80도 이상의 고온 챔버에서 60~120초간 분무 건조되고 건조 직후 수분이 고갈되며 표면 온도가 80도에 도달할 때 가해지는 열에너지가 바이러스의 껍질(Capsid)과 지질 덮개(Envelope)를 파괴해 감염력을 잃게 만든다.
이 공정만으로도 돼지유행성설사(PED)바이러스, 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PRRS)바이러스는 물론 열 저항성이 높은 ASF바이러스까지 최소 4log10 이상 사멸한다. 이어 2단계로 포장된 완제품을 21도 이상의 실온 창고에서 최소 14일(2주) 이상 보관하는 과정에서 수분 함량이 5~8% 미만인 저수분 상태로 온도가 유지되면 바이러스 입자가 점진적으로 탈수·붕괴되는 시간 의존적 사멸(Time-dependent Inactivation)이 일어난다.
21도 이상에서 6주(42일) 보관 시 바이러스 감염력 소실(2주 내외)과 유전자 분해(4~6주)의 2단계를 거치게 된다. 21도 이상 저수분 환경에서 6주간 보관할 경우 바이러스의 DNA 뼈대마저 물리·화학적으로 분쇄(Fragmentation)된다. 이렇게 되면 정량적 종합효소 연쇄반응(qPCR) 검사에서도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아 음성이거나 무의미한 수준으로 떨어져 방역 검사상의 PCR 양성 리스크까지 원천 차단된다.
# 해외 사례와 잔반사료 혼동해선 안 돼
국회의 개정안 발의 과정에서 “유럽연합(EU) 등 해외에서도 동종급여를 금지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EU의 광우병 관련 규정(Regulation (EC) No 999/2001)은 육골분 등 가공동물성단백질(PAP)의 동종 재순환을 금지하면서도 분무건조 혈장을 포함한 혈액제제는 명시적으로 금지 대상에서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현재 미국, 유럽, 남미 등 세계 양돈 선진국에서는 자돈용 면역 사료로 분무건조 혈장단백질을 광우병과 ASF 방역 가이드라인하에 사용하고 있다.
특히 잔반사료와 엄격한 도축 검사·자외선 살균·분무건조·후숙 멸균 프로세스를 거치는 혈장단백질을 동일한 ‘동종 유래 원료’라는 범주로 묶어 규제하는 것은 위험도에 따른 정밀한 방역 정책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중국도 2018년 ASF 발생 초기 혈장단백질 급여를 일시 중단했지만 이후 가공·검사 기준(농업농촌부고시 제91호)을 법제화해 안전성이 확보된 제품의 생산과 사용을 즉시 재개했다. 정부와 국회는 현장의 목소리와 학술적 근거에 귀를 기울여 방역 안전과 국내 축산 경쟁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정교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자돈 면역의 핵심 ‘혈장단백질’, 단순한 영양 공급원 아닌 ‘면역 활성물질’
최근 국제정세 악화, 기후 변화와 자연재해 등으로 곡물 원자재 가격 상승, 해상 운임 지수 상승, 고환율과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사료값이 오르면서 양돈 현장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유(Weaning) 시기의 자돈은 모돈의 초유로부터 얻던 면역 물질 공급이 끊기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장관 면역 저하를 겪는다. 이때 발생하는 사료 섭취량 급감과 장 융모 위축, 설사는 자돈의 폐사율을 높이는 주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돼지 혈장단백질은 이러한 이유 스트레스를 극복하게 만드는 핵심 사료 원료로 단순한 단백질 공급원에 그치지 않고 제품의 약 20%를 차지하는 IgG를 비롯해 다양한 외인성 면역 생리활성물질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혈장 내 IgG는 분자 구조가 유지된 상태(Active form)로 자돈의 장관 내에 머물면서 대장균, 살모넬라 등 장내 병원체와 직접 결합해 배출시키는 ‘장관 면역 제어’라는 특수한 생리 활성 작용을 직접 수행한다고 한다.
이 외에도 혈장단백질은 소화 효소 분비가 미숙한 자돈에게 90% 이상의 높은 소화율을 제공하고 특유의 풍미와 높은 용해도로 초기 사료 섭취량(Feed Intake)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린다고 한다.
자돈의 초기 섭취량은 출하 시기까지의 성장 속도를 결정짓는 핵심 지표인 만큼 양돈 농가에서는 항생제를 대체하면서도 장 건강을 지킬 수 있는 필수 원료로 평가받아 왔다.
이런 가운데 특히 IgG는 열과 시간 경과에 따라 기능이 저하되는 특성이 있는데 국내 도축장에서 원료를 수집해 가공에 이르는 물류 사슬이 짧은 국산의 경우 장거리 해상 운송을 거치는 수입산에 비해 항체 활성 손실이 적고 도축장부터 완제품까지 국내에서 온전히 이력을 추적·관리할 수 있어 오염 발생 시 신속한 검사와 리콜, 원인 규명 등이 가능하다.
최근 ASF바이러스 검사와 혈장단백질 생산 이력서(도축장 혈액검사, 혈액입고 검사, 분무건조, 후숙 멸균(21도), 완제품 검사, 출하일자 등) 제공을 통해 사료회사에 공급중인 혈장단백질 제품 모습.
# 전면 금지 대신 위험 기반 정밀 관리로
혈장단백질의 동종급여를 법으로 전면 금지할 경우 결국 국내 양돈 농가는 이유자돈 관리의 필수 무기를 잃게 돼 자돈 폐사율 증가와 항생제 남용이라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무엇보다 독자적인 국내 생산 기반이 소멸하면 수입산 원료에 완전히 종속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전면 금지가 아닌 과학적 위험 기반 정밀 관리 체계의 구축으로 도축장 혈액과 입고 차량에 대한 ASF 간이·PCR 검사 의무화로 오염 원료를 원천 차단하고 자외선 살균, 분무건조(출구 80도 이상), 21도 이상 14일 이상 후숙 멸균 공정 준수의 의무화, 로트별 출고 전 ASF바이러스 PCR 검사 음성 확인제와 생산 이력제 도입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병성감정기관 추가 지정과 자체 PCR 검사 승인을 통한 신속 대응 체계 구축을 통해 과학적으로 검증된 불활화 공정과 철저한 로트별 검사 체계가 결합한다면 방역적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최근 ‘전주기 ASF 방역대책’을 통해 도축장 검사 강화로 오염 혈액 원료의 공급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전국 돼지 도축장 64개소를 대상으로 출하돼지의 연간 ASF 검사 체계를 구축하고 특히 사료 원료로 공급되는 돼지 혈액탱크가 설치된 36개 도축장에 대해 매일 혈액 시료 검사를 실시한다.
도축장 내 교차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계류장과 작업장 내·외부, 차량 등 도축장 환경에 대한 바이러스 검사도 지속할 예정이다.
# 사료 등의 기준 및 규격 고시 개정 추진
이에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관련 산업 유지와 농가에서 사료로 활용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축과원이 과학적 근거에 따른 기술적 요건을 확인하고자 ASF DNA 사멸 적정 온도 연구를 추진중이다.
김재경 농식품부 축산환경자원과 과장은 “혈장단백질에서 ASF DNA가 검출된 것과 관련해 생산과정에서 적정 사멸 온도를 찾고자 축과원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현재 계획은 오는 10월경 축과원의 연구 결과를 받으면 최대한 빨리 사료 등의 기준 및 규격 고시 개정을 통해 혈장단백질 제조 공정과 관련된 내용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