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어려운 질문을 던져본다. 만약 (내가 기르는) 애완견이 시판되는 사료 먹고 폐사했다면 누가 책임을 질까? 또한 (농장에서) 사육중인 돼지가 사료를 먹고 폐사했다면 책임은 누가 지고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전자와 후자, 즉 애완견(반려견)과 돼지에 대한 상이한 감정, 논리, (동물)윤리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어 대답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두 사안에 공통된 답은 없겠지만, 정답과 비슷한 쪽으로 숙고할 계기가 된 사건이 올해 발생했다. 바로 아프리카돼지열병, 에이에스에프(ASF)가 그 주인공.
발생추이가 심상찮다. 비상상황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2019년 9월 국내 첫 발생 이후 ASF(아프리카돼지열병)은 2026년 현재까지 우리나라 양돈농장에서 총 79건 발생했다. 특히 올해 1월 16일부터 3월 16일 사이에는 전국 7개 시·도에서 24건이 집중 발생했다. 기존 발생지 경기·강원· 경북지역 외에 충남·전북·전남·경남 지역에서도 신규 발생했다.
그런데 놀랄만한 일은 돼지에게 먹이는 ‘혈장단백 사료’가 최근의 ASF감염 확산의 주원인으로 지목됐다는 것. 돼지 혈장단백 사료를 통한 ASF전파 가능성은 기존 ASF 방역의 뼈대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되는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2026년 ASF의 전국적 확산’은 감염 경로, 질병 특성, 산업 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대책마련이 지금보다 훨신 더 탄탄해져야 된다는 뜻이다.
혈장단백질 사료란 돼지 사료(특히 갓난돼지용 자돈 사료)에 쓰이는 혈장단백질 분말을 말한다. 과거엔 미국, 유럽(EU), 중국 등 축산 선진국 및 주요 축산물 생산국으로부터 전량 수입해 사용해왔는데, 현재는 국내에서도 생산중이다. 혈장단백질은 면역글로불린이 풍부해서 주로 갓난 돼지 사료로 쓰인다. 약 2~6% 비율로 첨가하는데 옥수수, 대두박(콩깻묵), 밀 등 곡물 원료에 혈장단백질 분말을 첨가제로 혼합해 사용한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올해 혈장단백질 사료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일으킨다고 인정했다. 법제처는 최근 오염된 사료(혈장단백질)로 인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하여 돼지를 살처분한 경우, 농가에 귀책사유가 없으므로 가축 처분 보상금을 감액 없이 전액(100%) 지급해야 한다고 법령 해석(유권해석)을 내렸다. 법제처는 우선 농가의 귀책사유 없음을 강조했다. 방역 수칙 미준수 등 농가의 잘못이 아니라, 공급된 배합사료 원료 자체의 오염으로 인해 질병이 발생했으므로 농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본 것.
농림축산식품부도 6월 법제처의 법령 해석을 거쳐 오염 사료 원료로 인한 ASF 발생은 농가 귀책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7월7일 지방정부에 관련 공문을 보내 올해 ASF 발생농가 24곳 중 ‘IGR-Ⅰ형’ 바이러스가 확인된 21곳에 살처분 보상금을 전액 지급하도록 했다. 기존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르면 보상금을 최대 80%까지만 지급할 수 있도록 기본 감액(20%) 규정이 적용될 여지가 있었으나, 법제처의 법령 해석과 농림축산식품부의 적극행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감액 없는 전액 지원이 가능해졌다.
◇ 법제처 “오염사료가 유발한 ASF는 농가 귀책사유 아님”... 그렇다면 사료기업은?
농식품부 역시 지난 7월 6일 서둘러 ASF 전 주기 방역관리 강화계획(7월 6일)을 발표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유전자 분석 결과와 역학적 특성 등을 종합한 결과를 볼 때 주요 발생 원인으로 ▲혈장단백 사료 원료 ▲불법 축산물 ▲야생 멧돼지를 통한 오염원 유입 등이 추정된다고 밝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로 농식품부의 ‘ 돼지 혈액 유래 사료의 제조 공정 개선 등 안전관리 체계 구축’이라는 대목.
농식품부는 멸균·살균 표준공정 제도화, 출고 제품에 대한 ASF 검사체계 마련, 제조시설 및 작업장 전반에 대한 위생관리 강화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이런 대책이 혈장단백 사료의 ASF감염을 제대로 막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아무런 구체적, 과학적 설명이 드러나 있지 않다. 그저 ‘조심해서 잘 하자’라는 식의 대책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아무튼 여러모로 이상하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에서도 농식품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관리 강화계획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사료제조 회사에 책임을 묻는 대목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앞서 서두에서 언급했듯, 애완견이 시판되는 사료를 먹고 폐사했다면 책임은 누가 지고 어떤 처벌을 받나 라는 질문에 대한 상식적.법률적 답변은 “반려견이 사료를 먹고 폐사했다면 사료 제조·판매업체가 법적 책임을 지며,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과 사료관리법 위반에 따른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라고 해야 될 것이다.
이를 돼지에 적용해보자. 사육중인 돼지가 사료를 먹고 폐사했다면 책임은 누가 지고 어떤 처벌을 받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상식적이고 법률적인 답변은 “사료 자체에 결함이 있어서 돼지가 폐사했다면 사료 제조사나 유통사가 책임을 진다. 민사상 책임 (손해배상)으로는 「제조물 책임법」 및 「민법」에 따라 폐사한 돼지의 가치, 향후 기대 수익 감소 등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형사처벌 및 행정처분도 이어질 수 있다. 행정처분으로는 해당 업체는 영업정지, 제조 중지 처분을 받거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등이 아닐까?
그런데 법제처, 농식품부는 사료제조업체에 대한 책임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심지어는 피해자랄 수 있는 돼지사육농장들의 연합체 대한한돈협회의 입장도 마찬가지. 그동안 한돈협회는 사료기업이 피해농가에 대한 법적,사회적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이었지만, 차차 ‘도의적 책임’을 다하라는 식으로 사료업계에 목소리를 낮췄다. ‘도의적 책임’이란 말의 참뜻은 과연 뭘까?
한돈협회는 이후 사료업체와 농식품부가 피해 농가에 회생자금을 지원한다고 하자 이기홍 한돈협회장은 “ASF는 한돈업계 전체가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우성사료가 농가 지원에 나선 것은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는 업계의 모범사례”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서둘러 피해농가 지원에 나섰다. 농식품부는 100억원 규모의 긴급경영안정자금 예산을 확보해 IGR-Ⅰ형 감염농가(혈장단백질 사료로 ASF 감염 피해를 입은 농가) 21곳과 예방적 살처분 시행농가 3곳 등 24곳에 재입식 비용, 사료 구매비 등을 융자 지원하기로 했다. 자금 한도는 축사면적에 따라 농가당 최대 5억원 수준.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그 어디에도 혈장단백질 사료를 먹고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되는 걸 막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 그저 상황을 서둘러 봉합하고 덮자는 움직임만 보일 뿐이다. 이래도 되는 걸까? 그래서 국회에서 관련법안이 발의된 것일 게다. 같은 종의 신체 성분으로 만든 사료의 제조 및 수입을 금지하는 「사료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방지를 위해 돼지 혈장 등 동종 신체 성분 및 남은 음식물(잔반)을 양돈용 사료로 제조·수입·판매·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사료관리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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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옥주 의원(경기 화성갑/더불어민주당, 사진)은 같은 종의 신체 성분으로 만든 사료의 제조 및 수입을 금지하는 「사료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진=송옥주 의원실] |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에 나온 '송옥주의원 등 10인, 제2218638호(2026. 4. 27.). 제434회 국회(임시회)' 법안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법안 제안 이유다.
“최근 ▲야생멧돼지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건수가 크게 줄고 있는 반면 사육돼지의 ASF 발생건수는 급증하고 있음. 특히 올들어 ▲충남ㆍ경남ㆍ전남ㆍ전북 등 그동안 발생하지 않았던 지역의 농장에서 발생이 눈에 띄게 늘어났음. 이런 와중에 ▲국내 농장에서 사육된 돼지가 도축돼 그 혈액의 혈장을 원료로 사용한 양돈사료에서 ASF 병원체 유전자가 검출되면서 ASF가 사료를 통해서 국내 농장으로 번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음. 실제로 ▲같은 종의 동물 신체 성분을 해당 동물에게 급여하는 동족포식사료는 광우병과 같은 질병의 전파를 비롯한 안전성 문제, 그리고 생명윤리적 논란으로 인해 유럽,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제한함.....(중략).....이에 따라 ▲급여 대상 동물과 같은 종의 신체 성분으로 만든 것을 사료로 이용하는 일을 제한하고, 국내외에서 질병 전파 사실이 입증된 사료의 특정 성분과 원료 사용을 제한하고 검사ㆍ관리할 수 있도록 함. ▲뿐만 아니라 남은 음식물의 사료 이용을 규제해서 가축의 전염병 감염과 축산물 품질 저하, 불공정 저가 판매행위, 신재생에너지(바이오가스) 전환 역행 등의 부작용을 방지하고자 함(안 제14조 및 제15조).“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자 관련업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ASF 방역 강화 속 돼지 혈장단백질 규제 논란>이라는 기사도 등장했다. 혈장단백질 생산업체가 이번 ASF발생의 원인제공자로 낙인이 찍혀버린 것이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파산 위기에 몰렸다고 항변한다. 또한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ASF에 감염된 돼지가 국가의 도축장 검역 시스템을 통과해 정상적으로 도축됐다면, 그 혈액을 원료로 사용한 사료업체는 피해자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이건 뭘까? 아무도 잘못한 사람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데, 법제처와 농식품부의 유권해석과 행정조치는 왜 이리 번개처럼 빠를까? 더구나 (사료 먹고 ASF감염되는 일에 대한)재발방지책을 절박하게 고민해야할 농식품부, 한돈농가(한돈협회), 사료기업들은 왜 이리 사태를 덮는 데만 급급한 걸까? 이런 상황에서 혈장단백질 사료 섭취 돼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감염을 막는 가장 근원적 방법일 수 있는 ‘법안 발의’엔 왜 또 반대입장으로만 일관하는 걸까? 혹시 ‘돼지라는 가축에겐 어떤 일이 생겨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데에만 모두 찬성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참고로 2026년 초(1월~3월) 국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으로 인해 농장 발생 24곳 등에서 총 17만 977마리의 사육 돼지가 살처분됐다. 2019년부터 따져보면 약 70만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된 것이다.
















